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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 천하 10대 명당에 터 잡은 소탈한 천년 고찰사찰 중앙 5층석탑 세계 3개밖에 없는 라마양식 탑매월당 김시습·백범 김구 머물다 간 흔적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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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01  12: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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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마곡사

<신 청풍명월의 지난소식> 공주 마곡사는 물의 흐름과 산세가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이어서 난세에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이자,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할 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 잡은 천년 고찰이다.

마곡사는 642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 체징이 중수했다고 하지만, 642년경 이 지역은 백제 30대 무왕이 지배하던 백제 땅으로서 백제는 660년 7월 나당연합군에게 망했으니, 아무래도 자장율사 건립설은 미덥지 않다.

마곡사란 절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이 설법을 할 때 삼밭의 삼(麻)처럼 많은 군중이 몰려와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지만, 선초부터 사곡면(寺谷)이라는 고을이름이 생길 만큼 유명한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곡사는 절의 재정이 빈약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건물들을 단청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 더욱 정감 있게 하는데, 현재 불교조계종 6교구 본사로서 충청지역의 70여 사찰을 관장하면서 템플 스테이로도 유명하다.

대개 오래된 사찰 아래에는 음식점, 숙박시설 등 사하촌(寺下村)이 형성되기 마련이지만, 마곡사 입구는 장승마을과 온천개발지로 더욱 성황이다.

일주문으로 들어가면 길 오른편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태극 문양처럼 굽이치는 것이 인상적인데, 개울을 따라 약 400m쯤 올라갔다가 다시 휘감듯하는 물길을 따라서 돌아가면 해탈문과 천왕문(문화재자료 제62호)이 있다. 그런데, 마곡사는 일반적인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 수미산(대웅전)의 가람배치와 달리 해탈문이 앞에 있고, 그 다음에 천왕문이 있다.

해탈문 왼편에 있는 영산전(지방문화재 제12호)은 다양한 불상 1000개(보물 제800호)가 있어서 ‘천불전’이라고도 하는데, 영산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효종 2년(1651) 중수한 것이지만 마곡사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특히 영산전 편액은 조선 초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에 반대해서 생육신으로 전국을 떠돌던 김시습이 마곡사에 머물러 있다는 소문을 들은 세조가 그를 설득하러 친히 이곳까지 왔을 때 써준 것이라 하고, 불상들은 원래 나뭇결 그대로여서 다양한 모습이 또렷했지만 언젠가 모두 금칠을 하여 마네킹처럼 특징 없게 변해 버렸다.

천왕문을 지나 계곡 위에 놓인 극락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대웅보전이나 대광보전보다 더 크고 높게 새로 지은 범종각이 이방인의 눈에 봐도 어색하기만하다.
대광보전 앞에 있는 5층 석탑(보물 제799호)은 원래 13층탑이었지만,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각순대사가 간추려서 5층탑으로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탑은 라마 양식으로서 국내에서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보가 아닌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인도,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3개밖에 없는 라마 탑이라고 한다. 사실 고려에 라마 양식이 수입된 것은 원나라 황실의 부마국이 된 14세기경부터인데, 당시 서울인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라마 탑이 세워진 것은 아마도 충혜왕후2년(1340) 공주군이 원의 평장사(3성의 정2품) 쾌쾌치의 아내가 된 경화(敬和)옹주의 외가라 하여 공주목으로 승격시킬 무렵에 세운 석탑이 아닐까 싶다.

또, 5층 석탑 뒤의 대광보전(보물 제802호)은 화엄종에서 가장 높이 모시는 비로자나불이 있는데, 대광보전의 창살 무늬가 아주 독특하다.

대광보전 현판은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명필인 김생의 글씨라고 하지만, 불분명하다.
대광보전 뒤 경내에서 제일 높은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은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겉보기에는 2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부여 무량사, 익산 미륵사와 같이 단층건물이다.

대광보전 왼편에는 일제 강점기에 백범 김구 선생이 삭발하고 승려가 되어 거처했던 백범당과 해방 후 귀국한 백범 선생이 마곡사를 찾아와서 기념식수한 향나무가 곁에 자라고 있다.

그런데, 마곡사 일대는 일찍부터 전쟁이 벌어져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천하명당으로 알려졌는데, 그 이론근거가 된 풍수지리설은 중국 남조시대 동진의 원제(元帝) 때 곽박(郭博)이 처음 주장한 이래 널리 퍼졌다.

풍수설은 사람이나 자연이 같은 이치로 움직인다는 만물일원설에 근거해서 지형을 사람이나 짐승 특히 용·뱀 등으로 비유하여 도읍지나 마을 터, 집터·우물터·정원수 배치 등에 응용하는 상지법(相地法)을 기초로 하며, 사람 몸속에서 혈관이 영양분과 산소를 운반하듯 땅속에도 경락과 같은 생기(生氣)의 길이 있는데 이 경로를 따라서 땅속에 돌아다니는 생기를 사람이 접하면 복을 얻고, 화를 피하게 된다고 한다.

생기가 뭉쳐있는 혈(穴)은 양택과 음택으로 나누는데, 양택은 인체의 경혈과 같은 곳에 사람이 사는 명당 터를 말하고, 음택은 망인이 땅에 묻혀서도 그 생기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지맥이 산맥을 통해서 달리다가 멈추는 곳에 뭉친 기(氣)가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혈을 이루며, 집이나 음택을 만들 때에는 이런 혈 위에 짓는 것이 좋으며, 혈은 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둘레를 산들이 에워싸는 형국이 좋고, 그 앞에는 반드시 물이 흘러야만 이른바 명당이라고 한다.

나말여초에 널리 퍼진 풍수설은 나라가 불안할 때마다 나타나서 혁명이론이 되는 도참설과 결합했는데, 6.25때에도 많은 피난민들이 십승지지인 마곡사를 찾아서 절 입구인 유구읍에 집단이주하기도 했다.

도참설로 유명한 정감록에서는 풍수의 근원으로 삼는 조산을 곤륜산, 종산을 백두산이라 하고, 백두산에서 시작된 지맥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에서 갈라져서 한줄기는 동해로 빠지고, 다른 하나는 지리산에 이른다고 하면서 십승지지를 꼽았다.

즉, ⑴경상도 풍기의 차암 금계촌 동쪽 골짜기 소백산 두 물길 사이 ⑵지금의 경북 봉화 동쪽인 안동시 춘양면 일대 ⑶충청도 보은의 속리산 아래 증항 네 시루목이 이어진 곳 ⑷전라도 남원의 운봉 동점촌과 행촌 주변 100리 ⑸경상도 예천의 금당동 북쪽 ⑹충청도 공주 계룡산과 유구 마곡의 두 물길 사이 ⑺강원도 영월군과 충북 단양군 영춘면 경계의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⑻전라도 무주 무풍면 북쪽 무봉산 동방 상동 ⑼전라도 부안 호암(금바위) 아래와 변산 동쪽 ⑽ 경상도 합천의 가야산 남쪽 만수동 등이다.

또, 조선 명종 때 남사고(格庵 南師古)도 격암유록에서 ⑴충청도 공주 유구와 마곡 사이 ⑵전라도 무주의 무풍 ⑶충청도 보은 속리산 ⑷전라도 부안 변산 동쪽과 호암 아래 ⑸경상도 성주의 만수동 ⑹경상도 봉화의 춘양 ⑺경상도 예천의 금당곡 ⑻강원도 영월의 정동쪽 상류 ⑼전라도 남원 운봉의 두류산 ⑽경상도 풍기의 금계촌 등을 십승지지라고 하였다.

십승지지의 공통점은 물의 흐름과 산세가 태극처럼 휘어 감고 있어서 외부에서는 안으로 들어가기 어렵고 또, 안쪽을 잘 알 수 없는 지형이며, 둘째 부분적으로 평탄한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급경사면으로 둘러싸인 V자 모양의 협곡이고, 셋째 큰 산맥의 중앙부에 위치해서 다른 지역과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간선도로와 떨어진 불편한 오지이고, 넷째 반드시 한쪽으로는 좀 더 넓은 도읍지과 연결되어 있으나 연결된 협곡의 폭이 병목(bottle neck)과 같이 비좁고, 다섯째 협곡 내에는 반드시 하천이 있으며, 그 하천은 병목 같은 협곡을 지나서 큰 하천과 연결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지역들은 일시적인 피난지 기능은 인정하더라도 장기간 살기에는 부적당하고, 또 근래에는 산간 오지까지 길이 넓혀지고 산을 개발하고 있어서 풍수설이 비판받고 있기도 하다.<법무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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