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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 -'전국 으뜸 사찰' 이란 뜻에서 '갑사' 이름 얻어웅진백제 시대 왕궁 사찰 명성6·25때 대부분 소실 규모 줄어, 부속건물 증축 모양새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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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01  13: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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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갑사 대웅전 전경

<신 청풍명월의 지난소식> 자식들 덕택에 효도여행을 다녀온 노부부를 부러워하는 주위사람들이‘외국에 가서 무엇을 구경하고 왔느냐?’고 묻자, 노부부는‘돌덩이들만 실컷 보고 왔다’고 푸념했다는 우스개처럼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겐 수백 년 동안 도시 전체가 박물관처럼 잘 보존된 외국의 건축물.조각.성벽들도 그저 밋밋한 돌덩이로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석조문화(石造文化)보다 목조문화가 많은 우리에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명성을 올린 어느 교수가 말했던‘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따라서 ‘충청도 절 구경하기(2011. 5.11, 5.18. 5.25.칼럼)에서 익힌 지식을 안고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천년 고찰 갑사를 찾아가보자.

동.서.남.북 4방에 동학사, 갑사, 신원사, 구룡사지가 있을 만큼 유명한 계룡산은 전라도 덕유산에서 운장산~ 동금산(東錦山=마이산)~ 대둔산으로 거슬러 이뤄진 400리 산세가 산 태극을 이루고, 전라도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해 영동~ 옥천을 거쳐 흘러온 금강은 수 태극을 이루는 산수태극지(山水太極地)인 천하의 명당이다.

계룡산은 삼한시대에 천태산(天台山), 삼국시대에 당의 장초금(張楚金)이 쓴 한원백제조(翰苑 百濟條)에 계룡동치(鷄龍東峙), 같은 책 옹씨주소인괄지(雍氏註所引括志)에서 국동유계람산(國東有鷄藍山)이라는 기록들과 함께 당시 백제의 서울인 웅진 동쪽의 계룡산은 중국에까지 알려진 것 같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쓴 지증대사탑비(聞慶鳳巖寺 智證大師寂照塔碑)에도 계람산(鷄籃山)이라고 했지만, 고려시대에는 옹산(壅山 또는 九龍山)으로 불리다가 계룡산이란 이름으로 굳어진 것은 선초 태조가 무학 대사와 함께 이곳에 도읍지를 정하고 공사를 착공한 이후부터라고 한다. 무학 대사는 이곳의 산세를 “금닭이 알을 품은 형세이고,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금계포란형 비룡승천형(金鷄抱卵形 飛龍昇天形)”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공주시내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논산 방향으로 12㎞쯤 가다가 계룡면 소재지에서 왼쪽 지방도로 4㎞쯤 들어가면 갑사가 있고, 대전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공주 마티터널을 지난 뒤 충남과학고 앞에서 샛길로 빠져나가면 민물장어구이 음식점으로 유명한 청벽마을인데, 이곳에서 산길로 약11㎞쯤 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유성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매시간 출발하는 시내버스가 약40분이면 도착하고, 공주시내에서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종점에서 일주문으로 올라가는 오른편 길가에는 음식점과 유스호스텔을 비롯한 숙박업소도 가득하고, 경내에서 템플스테이도 할 수 있다.

갑사사적기(지방문화재 제52호)에 의하면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갑사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에 아버지 개로왕이 전사하자, 22살의 젊은 왕자 문주가 피난한 웅진성에서 538년 성왕 16년 계획도시 사비성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왕 63년 동안 가장 큰 사찰이자 왕궁사원이었다.

백제의 사비천도 이후에도 위덕왕 3년(556) 혜명대사(惠明大師)가 중건했으며, 통일신라 후에는 문무왕 때 당에서 8년 동안 불법을 연구하다가 귀국한 의상 대사(義湘大師)가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로 삼았다.

창건 당시에는‘산허리에 세운 절’이라는 이름의 갑사(岬寺)였지만, 화엄 10찰의 하나가 되면서 ‘전국제일의 사찰’이라는 의미에서 갑사(甲寺)로 고쳤다고 하는데, 조선시대까지 전국 36본사의 하나였던 갑사는 6.25 때 대부분이 소실되자 지금은 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70여 말사 중 하나로 되었다.

예부터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고 할 정도로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절로 유명한 갑사는 특히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고목이 우거진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기는 오리(2㎞)나 되는 오솔길을 ‘오리 숲’이라고도 했는데, 당시 일주문은 지금보다 훨씬 아래에 있었다.

아무튼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지방문화재 제105호)에 이르면, 대웅전 오른쪽으로 계곡을 따라서 계룡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대웅전은 원래 계곡 너머 대적전 부근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선조 37년(1604)에 중건하면서 새로 지은 탓에 1600년이 되는 고찰 갑사의 대웅전이 국보나 보물도 아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연유이기도 하다.

대웅전 왼편에는 팔상전과 범종각이 있는데, 범종각의 동종(보물 제478호)은 조선 선조 17년(1584)에 주조한 직경 92㎝, 길이 132.5㎝의 종으로써 꼭대기에는 2마리의 용이 용뉴를 만들며 구름 위에 선 지장보살을 조각했다.

팔상전 바로 옆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 영규(靈圭) 대사를 모신 표충원이 있다.
갑사 아래 마을인 월암리에서 태어나서 일찍 출가하여 서산대사 휴정(休靜)에게서 불법을 배우고 갑사 청련암에서 도를 닦던 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해 7월 4일 승병 300여 명으로 의승군(義僧軍)을 조직하여 의병장 조헌과 함께 8월 1일 청주성 탈환에 나섰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자 사기가 크게 오른 대사는 승병 800여 명을 이끌고 같은 달 16일 조헌 선생과 함께 금산전투에 참가했으나, 부상을 입고 돌아오다가 18일 입적했다.

그 후 조정에서는 청주성 탈환에 공이 큰 의병장 조헌에게 정3품 당상관과 금단의를 하사하고 사후에 종2품 당상관 중추부사로 추증하기도 했으나, 승려들을 천시하던 지배계급의 편견으로 대사를 비롯한 승병들의 공적은 기록되지 못했다. 계룡면 유평리에 대사의 무덤이 있지만, 갑사 경내의 표충원에는 대사의 사당과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표충원 아래로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면 장경각이 있는데, 이곳에는 부처의 복장품과 조선 선조 2년에 간행된 월인석보 목판(보물 제582호)이 있다.

특히 월인석보는 세종 29년(1447)에 당시 왕자이던 수양대군이 지은 석보상절과 세종 31년 간행한 월인천강지곡을 합쳐서 엮은 책으로서 석가의 일대기와 공덕을 찬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당초 전 24권 중 21권에 해당하는 목판 57장이 보관 중이었으나 지금은 31장만 남아있다. 월인석보는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초기의 글자와 말이 그대로 담겨있어서 국문학상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이 건물 아래에는 갑사를 거쳐 간 수많은 고승들의 부도 탑이 즐비하다.
대웅전에서 대적전으로 가는 계곡에 2m 남짓한 이끼 낀 작은 탑이 공우탑(功牛塔)이는데, 이 탑은 갑사를 지을 때 커다란 소 한 마리가 나타나서 자재를 실어 나르는 등 힘든 일을 도와주다가 공사가 모두 끝나자 이곳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스님들은 그 소가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믿고, 소가 죽은 자리에 탑을 세우고 공우탑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아무튼 계곡 오른쪽에 있는 대적전(지방문화재 제106호)은 갑사 창건 당시 금당이 있던 곳인데, 임진왜란 이후 재건하면서 정.측면이 모두 3칸인 팔각지붕의 목조건물을 짓고 석가모니불과 문주보살.보현보살을 모시게 된 것은 대웅전 위치가 잘못돼 큰 피해를 입었다고 믿었기 때문일까?

대전적 앞의 부도(보물 제257호)도 원래 갑사에서 신흥암으로 올라가는 중간인 하사자암에 있던 것을 192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서 철당간이 있는 계곡 일대를 바라보면, 잡초와 고목들이 우거진 절터만으로도 갑사 가람이 백제의 서울 웅진성 보다 넓은 것을 알 수 있다.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지름 50㎝, 길이 60㎝의 원통 24개를 연결한 높이 30m의 철당간지주(보물 제256호)는 조선 고종 때 벼락으로 부러져서 지금은 15m가량만 남았는데, 본래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그 사실을 알리는 깃발 등을 매단 기둥인 당간 중 철당간은 국내에서 청주 용두사지와 갑사 두 곳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한 것이다. <법무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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